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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김 혜남 (정신분석의, 나누리병원 이사) 2025-01-24
안녕하세요 김혜남입니다. 
우선 이 협회에서 여러 나라에서 오선 무용치료전문가선생님들 앞에서 협회의 문을 여는 역할을 맡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국 무용치료협회 30주년 댄스테라피 국제 컨퍼런스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앞으로도 협회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원합니다. 더불어 환자의 질병의 치료와 삶의 질의 향상을 위해 파트너로써 함께 손을 잡고 춤을 추자고 청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참석하지 못하신 장박사님은 척추 관절 환자들이 다시 춤을 출 수 있도록 수술이 예약되어 있어 인사드리지 못함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장박사님과 저는 30년 전부터 인생이란 춤판에서 파트너가 되어 지금까지 발을 밟고 넘어지면서 온갖 춤을 섭렵하고 있는 법이 인정한 댄스 파트너입니다. 

김 혜남 (정신분석의, 나누리병원 이사)


전 오늘 이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여태껏 제 병명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드리고 있었는데 바로 이 자리에서 최초로 제 병을 공개하려 합니다. 제 병에 대해 암이다 죽을 병이다 여러 추측들도 많고 온갖 설들도 많았는데 저는 24여년 전 부터 바로 파킨슨씨 병을 앓고 있습니다. 파킨슨씨병은 바로 우리의 운동시스템에 장애가 오는 병입니다. 
저의 주된 증상은 쉬 피로하고 조금만 뭘 해도 금방 지치고 쉬어야 하며, 움직이기가 힘들고 걸음이나 어떤 행동을 시작하기가 힘이 들며, 얼굴 표정이 굳고 표정의 변화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몸의 리듬이 사라지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옷을 하나 갈아 입는데도 앉아서 겨우겨우 입고, 몸의 발란스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습나다. 마치 내가 몸 안에 갇혀 있어 몸과 정신이 서로에게 이방인이 되어 서로 낯선 사람들처럼 멀뚱히 바라만 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처음 병이 났을 때는 믿기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내가 왜? 내 마음은 분노와 부정 그리고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누워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너무 우울해서 우울 증약이라도 먹을까 생각중이었습나다. 그러던 어느 날 천정을 바라보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에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단지 미래가 조금 불확실해지고 현재가 조금 불편해진 것 외에는 나는 그대로인데 내가 왜 오지 도 않은 미래를 미리 끌어다가 현재를 망치고 있을까? 결국 내가 잃어버린 것은 현재의 시간과 현재의 나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내가 왜 이 병에 걸렸을까? 그것도 이른 나이에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곤 내가 내 몸을 돌보지 않고 학대해왔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휴식이란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내 몸은 항상 긴장상태였고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며 난 뭐든지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내 몸이 하는 소리에 귀기울이지 못했던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비단 병을 앓고 있는 나뿐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사회는 나르시시즘의 사회이자 강박의 사회이기도 합니다. 끝간데 없는 무한경쟁과 성공과 성취에 대한 병적인 집착, 타인과 자신에 대한 불신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서로서로 그리고 자신으로부터도 소외시키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가 겪었던 이 문제, 몸과 마음을 분리시켜 생각하며 몸의 소리를 무시하고 그저 성 공과 성취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는 이 문제가 바로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현대인들은 휴식을 모릅니다. 이들에겐 휴식조차도 일이 되어 있습니다. 운동 또한 일종의 강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 것도 강박이 되어갑니다. 끝없이 경쟁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맺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진실한 관계 맺는 법을 잊어버리고 또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바로 자발성과 자율성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얼마만큼의 자유를 우리는 누리고 있을 까요? 어쩌면 현대인은 현대사회라는 거대한 조직에 자신의 생존을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존재라는 느낌에 점점 더 의기소침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생활의 속도가 우리 인간의 본래의 속도를 일찌감치 추월하여 그 무리를 놓칠까봐 부지런히 숨이 차게 뛰어가는 모습이 우리네 현대인들의 모습입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에 쌓여서. 
이렇게 혼자만의 쇠우리에서 갇혀 고립되어 소통의 단절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러나 밖으로는 활기차고 행복해보이는 모습이 바로 현대인의 자화상입니다. 
우울의 반대말은 즐거움도 행복도 기쁨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생동감입니다.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생동감입니다. 바로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통합과 소통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이 고립되고 소외되며 통합된 주체적 존재로써의 자신을 잃어갈 때 무용치료는 우리가 몸을 느끼고 움직임으로써 우리가 몸과 마음이 하나인 유일한 사람이라는 자신에 대한 인식을 고양 시켜줍니다. 게다가 무용은 intergration을 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다시금 자신이 점령하고 느낌으로써 분열된 자신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써 다시 느끼게 해줍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 함께 춤춘다는 것은 타인과의 교감 능력을 키워줌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해줍니다. 
제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제 몸이 반응하는 게 딱 두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휴식과 리듬입니다. 내 몸이 주저하고 움직여지지 안흥E 때 노래를 부르면 그 박자에 맞춰 몸이 움직여집니다. 
춤은 이 우주의 리듬에 자신의 몸의 리듬을 맞출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러고 무엇보다도 춤은 재미있습니다. 
제가 유교수님을 만난 지가 30여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처음 국립병원에서 만성환자들을 춤추게 하고 춤으로 표현하고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게 30년전의 일입니다. 
이후 우리는 동료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동안 한국에서의 무용치료가 성장하 고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세게학술대회까지 열릴 정도로 발전 해온 것을 보았습니다 .어려운 일도 화나는 일도 많았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사람들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면서 여기까지 온 유 교수님과 회원여러분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전 모든 치료는 환자와 치료자가 함께 추는 왈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환자는 어떻게 발을 떼어야 할지 모릅니다. 치료자가 살며시 다가가서 환자의 보폭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환자는 차츰 자신의 스텝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치료자와의 교감을 통해 멋진 춤을 출 수 있게 됩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도 학회라는 춤판에서 만나서 신명나는 춤을 함께 추기를 제안합니다. 
Labour is blossoming or dancing where(노동이 꽃피고 춤추는 곳에는) 
The body is not bruised to pleasure soul.(육체 가 영혼을 즐겁게 하기 위해 상처 받지 않고) 
Nor beauty born out of its own despair,(절망으로부터 아름다움이 태어나지 않으며) 
Nor blear-eyed wisdom out of midnight oil. 
(한밤의 기름으로부터 흐린 눈의 지혜가 생겨나지 않는다.) 
o chestnut-tree,great-rooted blossomer,(오,밤나무여 ,거대한 뿌리로 꽃피우는 자여, ) 
Are you the leaf, the blossom or the bole?(너는 잎이냐, 꽃이냐, 아니면 줄기냐?) 
o body swayed to music, 0 brightening glance, 
(오,음악에 맞추어 흔들리는 육체여,오,빛나는 눈이여,) 
How can we know the dancer from the dance? 
(우리는 어떻게 춤과 춤추는 이를 구별할 수 있는가?)